소년의 비밀지도
The Boy's Secret Map
2025
한 인간이 평생 연기해온 배역에서 내려오는 일에는 예행연습이 필요하다. 가장이라는 역할, 혹은 사회가 그에게 부여한 직함들은 마치 피부처럼 들러붙어 있어, 그것을 벗어내는 데에는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격리가 요구되기 때문이다. 나의 아버지는 지금 은퇴라는 거대한 막이 내려오기 직전, 무대 뒤편의 대기실과도 같은 시간 속에 머물고 있다.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은 사회적 의무와, 곧 도래할 절대적인 자유 사이. 그 모호한 경계의 틈새에서 아버지는 안면도라는 섬을 택했다.
아버지는 주말마다 섬으로 향해 집을 고치고, 배를 몰고, 바다에 낚싯대를 던진다. 얼핏 보면 소일거리처럼 보이는 이 행위들은 사실 한 남자의 치열한 자아 복원의 과정이다. 도시에서의 삶이 효율과 생산성을 위한 것이었다면, 이곳에서 그가 다루는 사물들은 오로지 자신의 만족과 감각만을 위해 존재한다. 타인을 위해 기능했던 손이 비로소 자신을 위해 움직일 때, 노동은 놀이가 되고 생계의 수단이 아닌 유희의 도구로 전환된다. 아버지는 이 쓸모없는 몰입을 통해, 타인의 시선으로 지탱되던 세계를 허물고 자신만의 질서를 다시 축조하고 있다.
나는 이 과정을 기록하기 위해 두 시간선의 사진을 겹쳐 놓는다. 하나는 낡은 앨범 속, 아버지가 젊은 날 기록해둔 흑백의 사진이다. 사진 속 청년은 아직 누구의 아버지도 아니었던 시절, 호기롭게 카메라를 응시하며 바다 앞에 서 있다. 그 눈빛 에는 미지의 세계를 향한 두려움 없는 욕망이 서려 있다. 또 하나의 사진은 은퇴를 준비하는 현재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사진 속의 그는 카메라를 응시하는 대신, 묵묵히 수평선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손끝을 내려다본다. 나는 유리창 너머에서, 혹은 그의 등 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셔터를 누른다. 이 두 시간의 간극 사이에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한 남자, 김민학이라는 사람의 고유한 캐릭터를 비로소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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