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소와 수집 사이에서 처음엔 그저 청소가 귀찮은 사람의 변명 같았다. 닦아내고 돌아서면 어느새 다시 내려앉아 있는 저 회색 가루들이 지긋지긋했다. 그러다 문득, 햇빛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오후에 공기 중을 부유하는 먼지들을 멍하니 바라본 적이 있다. 저 수많은 입자는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어쩌면 저것들은 단순한 더러움이 아니라, 이 집이, 그리고 우리가 매일 조금씩 닳아 없어지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그 순간부터 나는 청소기를 내려놓고 핀셋을 들었다. '치우는' 행위가 '모으는' 행위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2. 숨을 멈추는 시간 먼지를 수집하는 일은 생각보다 고된 육체노동이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수행이다. 핀셋으로 먼지 뭉치를 집어 올릴 때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이다. 내가 숨을 조금만 거칠게 내쉬어도, 그 가벼운 존재들은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다. 나는 먼지 앞에서 숨을 죽인다. 작은 투명 큐브 안에 그것들을 온전한 형태로 안치시키기 위해, 나는 내 몸의 움직임을 최소화하고 가장 조용한 상태가 된다. 역설적이게도 가장 하찮은 것을 다루기 위해, 나는 가장 경건한 자세를 취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먼지의 무게가 아니라, 그것을 대하는 내 마음의 무게를 느꼈다.
3. 회색 속에 숨겨진 색깔들 맨눈으로 볼 때 먼지는 그저 회색 덩어리였다. 하지만 큐브에 담아 확대경으로 들여다본 먼지의 세계는 놀라울 만큼 다채로웠다. 그 안에는 빨간 스웨터의 보풀, 파란 이불의 섬유, 머리카락,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짝이는 입자들이 뒤엉켜 있었다. 그것은 우리 가족이 입었던 옷이었고, 덮었던 이불이었으며, 우리가 비비고 살았던 시간의 파편들이었다. "아, 이게 우리였구나." 먼지는 더러운 쓰레기가 아니라, 우리 삶이 남긴 가장 솔직하고 내밀한 자화상이었다. 나는 그 작은 큐브 속에서 우리 집의 역사를 읽었다.
4. 사라지는 것을 위한 집 나는 큐브들을 하나씩 채워나가며 일종의 안도감을 느꼈다. 창문을 열면 바람 한 번에 사라져 버릴 것들을, 단단한 투명 상자 속에 붙잡아 두었다는 안도감이다. 물론 이것은 미련한 짓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새로운 먼지를 만들어낼 것이고, 나의 수집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 무용한 짓을 멈추지 않는다. 큐브들이 하나둘 쌓여 작은 탑이 되고 벽이 될 때, 나는 보이지 않던 시간을 눈으로 확인한다.
이 <먼지 아카이브>는 거창한 예술적 담론이 아니다. 그저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나의 소심한 저항이자, 결국 먼지로 돌아갈 우리네 삶을 잠시 붙잡아두려는 애틋한 기록일 뿐이다. 나는 오늘도 바닥에 엎드려, 흩어진 시간들을 줍는다.